감정이라는 선이 점점 무뎌지는 게 느껴진다. 20대 때 느꼈던 안 좋은 감정들, 그리고 좋은 감정들까지도 시간 앞에 무뎌져간다. 어쩌면 이렇게 나이를 먹는 건가 싶기도 하다. 감정의 폭풍은 잠잠해져 고요한 바다처럼 비슷한 소리를 낼 뿐이다.
생각해 왔던 일들, 사람들, 세상 등이 점차 희미해져감을 느낀다. 빛나는 열정 대신 파란 평온을 택했는지도 모르겠다. 하루하루 단조로운 생활을 하다 보니 생각조차 무뎌져 간다. 빛나는 감정을 다시 한 번 느끼고 싶다.
어쩌면 이조차도 무던해지는 과정이 아닐까도 싶다. 매일 새로운 아침을 맞고 또 점심, 그리고 저녁을 맞을 때마다 나는 물에 오래 씻긴 조약돌처럼 마음이 매끈해져 가는지도 모른다. 적어도 20대의 날 선 감정들의 소용돌이보다는 지금의 평온한 마음이 좋긴 하다. 나는 조금은 무던해졌을까.
벅차오르는 감정들과 생각들이 사라져 버리고 그 자리엔 평온함만이 남아 있다. 어쩌면 아직 '나'라는 배가 선착장에 머무르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. 국비교육을 듣고 취업을 하고 또 새로운 걸 배우고 하다 보면 무뎌진 감각들도 다시 새로운 활기가 되어 돌아오지 않을까.
많은 생각들, 감정들을 게워내면서 나는 많이 편안해졌다. 하지만 투정부리는 아이처럼 이 편안함이 마냥 달콤하지는 않다. 정말 이렇게 그냥 편안해도 되는 걸까. 편안함보다는 '살아 있다'는 감각을 더 느끼고 싶다. 그러기 위해서는 내 삶에도 변화가 필요하다.
무뎌진다는 건 나이를 먹어가는 과정이라고 한다면 나는 무뎌지기보다는 무던해지고 싶다. 모진 풍파를 다 겪고 나서 마주하는 파란 하늘과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. 비록 내 삶에선 또 비가 내리고 구름이 낄 날도 있겠지만, 그럼에도 푸르름, 청춘은 유지하고 싶다.
10년 전만 하더라도 나는 내 감정에, 생각들에 이토록 내가 무뎌지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. 세월이 약인지, 진짜 먹고 있는 약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다. 나는 늘 마음은 20대 같이 살고 싶다고 생각하곤 하는데 이런 무뎌짐을 보면 새삼 내가 나이를 먹어 가고 있음을 느끼곤 한다.
새로운 노래를 듣고, 새로운 책을 읽고, 또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내 안의 무뎌짐도 덜해질지도 모른다. 어찌되었건 생의 감각을 되찾고 싶다. 무던하게 살면서도, 감정은 무뎌지지 않았으면 좋겠다. 그런 바람이다.